📅 2026년 9월 25일 | 한국경제
“작은 구멍 하나가 큰 배를 가라앉힌다.”
— 벤저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1758)
💡 핵심 요약
건강기능식품 회사에서 포장 상자 구매를 담당한 차장이 납품가를 개당 80원 올리게 한 뒤 차액을 되돌려받는 방식으로 5년간 188차례에 걸쳐 6억1619만원을 챙긴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여기서 숫자 두 개가 다르다. 회사가 더 지급한 금액은 7억6596만원인데 피고인이 받은 돈은 6억1619만원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은 회사의 손해가 아니라 피고인이 취득한 이득액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5억원을 넘으면 법정형이 3년 이상 유기징역인데도 2년 집행유예가 나온 경로가 형법에 있다.
- 선고: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2형사부가 2026년 9월 1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40대 차장 A씨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선고
- 지위와 업무: 2018년 11월~2024년 9월 서울 송파구의 한 건강기능식품 회사 차장 / 관절 관련 자사 제품의 포장 상자를 선정하고 구매 가격을 조정하는 업무 담당
- 첫 사례: 2019년 7월 상자 1만 9050개를 주문하며 납품업체 제시가보다 개당 80원 비싸게 납품하도록 요구 → 회사가 152만4000원을 더 지급 → 이 중 세금 명목 등을 제외한 147만여원을 여동생 명의 계좌로 회수
- 전체 규모: 2024년 11월까지 모두 188차례 / 회사가 정상 가격보다 더 지급한 금액 7억6596만원 / A씨가 주변인 명의 계좌 등으로 돌려받은 돈 6억1619만원
- 쟁점: A씨 측은 돌려받은 돈 중 부가가치세로 납부한 금액 등은 이득액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 / 재판부는 특경법상 이득액은 범죄행위로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을 합한 금액이며 세금 등 조건이나 부담이 붙었는지는 이득액 산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배척
- 양형: 재판부는 “업무상 임무에 반해 5년 이상의 긴 기간 동안 188차례에 걸쳐 6억원이 넘는 빽마진을 취득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 / 다만 회사 계좌에 5억824만원을 입금해 피해 상당 부분을 회복했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
- 용어: ‘빽마진’은 거래 대금을 부풀리는 등의 방식으로 판매자가 받은 돈 일부를 구매 담당자에게 뒷돈으로 돌려주는 것을 뜻하는 은어
※ 이 글은 공개된 1심 판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상급심 진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 알아두면 좋은 용어
- 업무상배임 :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업무상 임무에 위배해 재산상 이익을 취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범죄. 일반 배임보다 형이 무겁다.
- 이득액 :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가중처벌 구간을 정할 때 쓰는 기준. 회사가 입은 손해가 아니라 범인이나 제3자가 취득한 재물·재산상 이익의 가액이다.
- 정상참작감경 : 흔히 작량감경이라 부르는 것. 법정형에 하한이 있어도 이 감경을 하면 하한이 절반으로 내려가, 집행유예가 가능한 구간까지 형을 낮출 수 있다.
📚 관련 기준 본문
※ 아래 인용 상자는 법조문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해 요건을 풀어 정리한 요약이다.
1. 형법 제355조 제2항·제356조 — 업무상배임의 구성요건
임무에 위배하여 이익을 취하고 손해를 가한 때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제355조 제2항).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제355조의 죄를 범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제356조).
👉 사건 연결: 조문의 요건을 이 사건에 하나씩 대어 보면 빈틈이 없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는 상자를 선정하고 구매 가격을 조정하는 업무를 맡은 담당자이고,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는 납품업체가 제시한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납품하게 한 것이며, 재산상 이익의 취득은 차액을 돌려받은 것이고, 본인의 손해는 회사가 더 지급한 금액이다. 눈여겨볼 것은 제355조 제2항이 이익의 귀속처를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로 넓게 적었다는 점이다. 돈을 자기 계좌가 아니라 여동생 등 주변인 명의 계좌로 받았다는 사정이 구성요건을 비껴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2.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제3조 — 기준은 손해가 아니라 이득액이다
7억6596만원과 6억1619만원 사이
형법 제355조(횡령·배임) 또는 제356조(업무상의 횡령과 배임)의 죄를 범한 사람은 그 범죄행위로 인하여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하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때에는 다음과 같이 가중처벌한다. ⑴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⑵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 3년 이상의 유기징역(제3조 제1항). 이 경우 이득액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제2항).
👉 사건 연결: 기사에 나온 두 숫자가 왜 다른지가 이 조문으로 설명된다. 회사가 더 지급한 7억6596만원은 배임죄의 ‘손해’에 가깝고, A씨가 돌려받은 6억1619만원은 특경법의 ‘이득액’이다. 조문 문언은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가액이라고 적었으므로, 가중처벌 구간을 가르는 것은 회사가 잃은 돈이 아니라 범인 쪽으로 넘어간 돈이다. 6억1619만원은 제2호의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 구간에 들어가고,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 된다. 참고로 5억원이라는 선은 형법상 업무상배임(10년 이하)을 하한이 있는 형으로 바꾸는 문턱이다. 상한을 정하는 법에서 하한을 정하는 법으로 성격이 달라진다.
3. 특경법 제3조의 ‘가액’ — 세금을 냈어도 이득액은 줄지 않는다
취득한 때의 가액이 기준이다
특경법 제3조의 이득액은 범죄행위로 인하여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을 합한 금액을 뜻한다. 재판부는 세금 등 조건이나 부담이 붙었는지는 이득액 산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부가가치세 납부액 등을 이득액에서 제외해 달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사건 연결: A씨 측 주장은 실무에서 자주 나오는 논리다. 받은 돈 중 세금으로 나간 부분은 손에 남지 않았으니 이득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 거래에서 152만4000원 중 147만여원만 실제로 건너간 것도 그런 구조로 보인다. 그러나 조문이 정한 기준은 취득한 시점의 가액이고, 취득 이후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는 다음 단계의 문제다. 세금 납부는 이미 취득한 이익의 처분에 해당한다는 것이 판례 법리다. 이 구분이 실제로 중요한 이유는 5억원이라는 문턱 때문이다. 세금이나 비용을 공제할 수 있다면 이득액이 5억원 아래로 내려가 특경법 적용을 벗어날 수 있고, 그러면 법정형이 3년 이상에서 10년 이하로 바뀐다. 공제 가능성을 다투는 일이 곧 적용 법조를 다투는 일이 된다.
4. 형법 제53조·제55조·제62조 — 3년 이상인데 2년 집행유예가 나온 경로
하한을 절반으로 내리는 조문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다(제53조). 법률상의 감경에서 유기징역을 감경할 때에는 그 형기의 2분의 1로 한다(제55조 제1항 제3호). 그리고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기간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제62조 제1항).
👉 사건 연결: 특경법이 정한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그런데 선고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조문을 순서대로 따라가면 길이 보인다. 제53조로 정상참작감경을 하면 제55조 제1항 제3호에 따라 유기징역의 형기가 2분의 1로 내려가므로, 하한 3년이 1년 6개월이 된다. 그 범위에서 징역 2년을 정하면 제62조 제1항이 요구하는 3년 이하라는 조건을 충족하므로 집행유예가 가능해진다. 재판부가 유리한 정상으로 든 것은 5억824만원 입금에 따른 피해 회복과 형사처벌 전력 없음이었다. 법정형의 하한이 곧 실제 선고형의 하한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피해 회복이 감경의 실질적 지렛대가 된다는 점이 함께 드러난다.
5. 외부감사법 제8조 — 188번이 5년간 지나간 구조
업무 분장과 책임
회사는 신뢰할 수 있는 회계정보의 작성과 공시를 위하여 내부회계관리규정과 이를 관리·운영하는 조직, 즉 내부회계관리제도를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는 회계정보의 오류를 통제하고 이를 수정하는 방법, 회계정보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 및 조정 등 내부검증, 회계정보의 작성 및 공시와 관련된 임직원의 업무 분장과 책임에 관한 사항이 포함된다(제8조 제1항). 회사의 대표자는 내부회계관리제도의 관리·운영을 책임진다(제3항).
👉 사건 연결: 형사 판결과 별개로 회계 쪽에 남는 질문이 있다. 왜 188번이 5년 넘게 지나갔는가. 기사에 적힌 A씨의 업무는 “포장 상자를 선정하고 구매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공급처를 고르는 권한과 가격을 정하는 권한이 한 사람에게 모여 있었다는 뜻이다. 제8조 제1항이 업무 분장과 책임을 내부회계관리규정의 필수 항목으로 넣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울러 같은 항의 정기적인 점검과 내부검증은 이런 유형을 잡아내는 장치다. 개당 80원은 단가표만 보면 눈에 띄지 않지만, 동일 품목의 단가 추이나 경쟁 견적과의 대조를 정기적으로 돌리면 드러난다. 이 사건에서 회사가 입은 손해는 회계상 포장재 매입원가의 과대계상으로 장부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숫자는 있었지만 그 숫자를 검증하는 절차가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 시사점
- 개당 80원의 산수를 확인해 볼 만하다 : 1만 9050개 × 80원 = 152만4000원으로 기사의 숫자와 정확히 맞는다. 한 건은 백만원대지만 188번이 쌓여 6억원이 됐다. 단가 항목의 작은 차이는 수량과 횟수를 곱하는 순간 성격이 달라진다.
- 특경법은 손해가 아니라 이득액을 본다 : 회사가 더 낸 돈은 7억6596만원인데 가중처벌 구간을 가른 것은 범인 쪽으로 넘어간 6억1619만원이다. 조문 문언이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가액이라고 정했기 때문이다.
- 세금을 냈어도 이득액은 줄지 않는다 : 기준이 취득한 때의 가액이어서 이후의 지출은 이익의 처분으로 본다. 이 다툼의 실질은 5억원 문턱을 넘는지 여부이고, 그것이 곧 적용 법조와 법정형을 결정한다.
- 법정형의 하한이 선고형의 하한은 아니다 : 정상참작감경을 하면 유기징역의 형기가 절반으로 내려가 하한 3년이 1년 6개월이 되고, 3년 이하 선고가 되면 집행유예의 문이 열린다. 세 조문을 이어 붙여야 결론이 보인다.
- 피해 회복이 감경의 지렛대다 : 재판부가 유리한 정상으로 든 것은 5억824만원 입금과 전과 없음이었다. 이득액을 다투는 것과 돌려놓는 것은 양형에서 서로 다른 무게를 갖는다.
- 권한이 한 사람에게 모이면 통제가 사라진다 : 공급처 선정과 가격 결정을 같은 사람이 맡은 구조였다. 외부감사법이 내부회계관리규정에 업무 분장과 책임, 정기적 점검과 내부검증을 넣어 둔 이유다. 단가 추이와 경쟁 견적 대조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점검이다.
